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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초등학교 어린이 일기 보는 게 인권침해인가 떠들어보기




뚝딱뚝딱 인권짓기

김규항님의 글을 늘 읽으면 단문으로 짧게, 그리고 그 단문들을 엮어내는 솜씨에 고개가 숙여진다. "뚝딱뚝딱 인권짓기". 서점에 갈일이 있으면 꼭 봐야 할 책이 생겼다.
얼마전 보도되었던 "초등학생들의 일기를 선생님이 보는 것이 비인격적인 일인가"는 수십년간 전혀 문제시되지 않았던 아이들의 인권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갖었다는 데에 무척이나 의의가 있는 일이었다.그리고 그것이 "다른 사람이 일기를 보는 것은 아이들에게 비인격적인 일"인 것으로 마무리되면서 점차 우리 사회도 "인권"이란 부분이 인정받고 있단 생각을 했다.

초딩시절, 아니 국민학교 시절, 선생님에 일기숙제는 가장 귀찮은 것이었다. 자유롭게 쓰라고 하면 기분좋은 일이 있을 때 쓰고 싶던 일기였지만, 숙제라는 속성이 강압적이기에 매일 일기를 쓰는 건 그 자체로 스트레스였다. 그림일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초딩 2-3년 시절. 일기는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릴만한 공간과 밑에 네모칸 원고지로 세줄정도의 글을 쓸 수 있는 일기였다. 난 밑에 글을 쓸 수 있는 세줄가운데 세가지 단어는 꼭 넣었다.

"오늘". "그리고", "왜냐하면"...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세단어는 강압적으로 일기를 써야했던 나에게 일기를 썼다는 필요충분조건을 채우기 위한 단어들이었다.
오늘 하루를 보내며 저녁 때 쓰는 일기니, "오늘"이란 머릿말로 시작해야 했다. "어제", "내일"이 될 수는 없는 노릇. "그리고"는 하루동안 지내면서 한가지 일만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되도록 상세한 하루를 서술하려면 꼭 필요한 접속사였다. 적어도 하루동안 두세가지 일은 일어났기에 일기(하루동안의 기록)에는 꼭 "그리고"를 썼다. "왜냐하면"을 쓴 건 무엇을 했던 사실엔 꼭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싸움을 해도 그건 눈이 와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대략 예시로 정리해 보면

"오늘 아침에 눈이 왔다. 그리고 눈싸움을 했다. 왜냐하면 눈이 와서 기분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이같이 세 단어가 그림일기안에 들어가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는 이유는, 내 그림일기를 보았던 선생님, 어른들 때문이다. 누군가 내 일기를 보고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공통된 단어가 쓰여있음을 가르쳐 준 건 국어공부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던 일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안뒤로는 그림일기를 쓰는 게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는 사실. 숙제라 어쩔 수 없이 했지만, 세 줄을 쓰는 데에 이전에 써내려갔던 시간보다 너무도 오랜 시간동안 세 줄을 적었다. 내 일기를 쓰면서 쓰고 싶은 단어를 쓰지 못하고 자기검열을 해야 했던 것. 그리 상쾌한 일은 아니다.

여하튼, 애들이라고 무시하지 마라. 애들도 인격이 있고 인권이 있다. 8살짜리 어린애에게도 개똥철학은 있다. 일기는 스스로와의 대화다. 제3자(선생님)와 일기에서까지 대화하고 싶겠나. 학교에서 맨날 혼나는 것도 지겨운데...

덧글

  • 첫비행 2005/04/19 20:08 #

    블로그는 자발적인 공개지만, 초딩 시절의 일기는 강제였죠.
    '방학 때만 되면 한달치 하루만에 다 쓰기' 신공을 발휘하던 때나 기억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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