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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이 뚫어져라 응시하는 눈빛은 미처 다하지 못한 말들이 숨어있다는 뜻과 같다.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은 못했던 말을 막 꺼내려 한다. "미치도록 잡고 싶었던 네놈이 이 자리에 앉아 있었구나, 미치도록 꼭 잡고 싶었다." 공교롭게 <그놈 목소리>의 마지막도 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한경배(설경구)의 눈빛으로 마무리된다. “똑똑히 들어주십시오, 그놈이 지금 여러분 주위에 있습니다.” 그리고 흐르는 실제 범인의 목소리. 120분간 영화 속 현실과 실제 사건 사이를 자유롭게 저울질하던 <그놈 목소리>는 마지막 실제 범인 음성을 통해 영화 속 현실과 실제를 일치시킨다.
미제 사건이 영화와 만났을 때 내리는 결론은 옳고 그름의 잣대가 아닌 관객과의 전적인 동질감이다.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여전히 지금도 실존하고 있다는 것. 그 시대의 자화상과 같은 미제 사건은 지금도 똑같이 자화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살인의 추억>이 이를 간접적으로 질문하고 있다면 <그놈 목소리>는 직접적으로 강변한다. 그 놈을 꼭 잡아야 한다고. “마지막 장면을 위해서 끝까지 갔다”는 박진표 감독의 말처럼 <그놈 목소리>는 마지막을 향해 차근히 분노와 억울한 울분을 부모의 가슴속에 묻어놓는다. 44일간 유괴당한 부모의 생지옥을 찬찬히 살피는 과정도 이 마지막을 위한 전초전에 해당한다. ![]() 돌이켜보면 박진표 감독은 늘 단 한 가지 이야기를 쫓았다. 노인들의 성은 소중한 것이고, 에이즈에 걸린 소수자들의 사랑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이야기. 곁가지 유머와 잔재미, 영화적 완성도는 차치하더라도 이 진중하게 쫓는 단 하나의 목소리는 늘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놈 목소리>에서 멍청한 경찰들은 끝까지 멍청하고, 악랄한 범인은 끝까지 악랄한 단편적인 모습들 또한 모두 마지막 한 주장을 위한 근거에 속한다. 그러나 그 근거가 다큐멘터리가 아닌 영화와 만났을 때에 필연적으로 일치한다고는 말할 수 없는 일. 영화가 중반에 이르러 반복되는 가족의 슬픔에 어느새 면역돼 느슨한 꾸밈새를 갖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90년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노태우의 연설 뒤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범인과의 사투, 영화는 때로 역설적인 광경에도 초점을 맞추지만 그것 또한 힘을 얻지는 못한다. 그저 한경배의 절박한 심상과 연결될 뿐이다. 신을 믿지 못하겠다며 십자가를 부수었지만, 돈가방을 끼고 뛰어가는 입에서 주기도문 나오는 것은 그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싶다는 의지일 뿐이다. ![]() 영화는 종종 유괴의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웃음의 장치를 심어놓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긴장감의 숨통을 트여주진 못한다. 실제 사건이 영화의 현실이 될 때, 그리고 그것이 완역한 인물들에 의해 실제화 되었을 때 영화는 영화적인 서사로 다시 짜여져야 했다. 그것이 역설이 되었든, 풍자가 되었든 그 힘은 곳곳에 분산되어 의미있게 살아 있었다면 실제사건과 시대적인 맥락이 어우러진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 선동적인 움직임을 이끌어내는 데에는 성공한 것 같다. 느슨한 감각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극장 곳곳에서 훌쩍이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영화와 미제 사건이 어떻게 실제적 분노를 이끌어내는가에 대한 또다른 질문이 될 수 있다. 선동적이며 다분히 신파적인 '그것이 알고싶다' 후속편이라 하더라도 그 진정성에는 손을 들어줄 수밖에.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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