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설이다’는 그저 그런 할리우드 오락 영화이다. 최근 할리우드 스릴러 영화 법칙이 되어 버린 ‘깜짝 쇼크’ 장면들이 대거 등장하고 CG로 떡칠된 액션 장면들은 철철 넘친다. 영화 후반부에 들어서는 억지 교훈을 남기기 위해 ‘고분 분투한다’는 느낌마저 준다.
그런데도 ‘나는 전설이다’는 볼만한 영화다. 이유는 많은 이들이 말하는 영화 시작 후 한 시간 동안 나오는 주인공 로버트 네빌의 ‘외로움’에 대한 묘사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죽거나 좀비가 된 뉴욕시. 아무도 없는 대낮에 로버트 네빌은 혼자 스포츠카로 거리를 질주한다. 차가 막히기를 하나 시비 거는 사람이 있나. 한낮에 뉴욕은 로버트 네빌의 것이다. 그리나 밤이 되면 뉴욕의 주인은 달라진다. 좀비로 가득한 도시를 피해 로버트 네빌은 집에서 모든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다.
황량한 도시에 나 혼자 떨어져 있다는 사실. 이 간절하다 못해 바보가 되어 가는 인물을 영화는 찬찬히 들여다본다. 이를 테면 매일 비디오 가게에 들려 예쁜 마네킹과 대화하고 그 마네킹이 다른 곳으로 옮겨진 것에 화를 내는 순간, 야채를 다 먹으라고 강아지에게 혼잣말로 말을 거는 순간들이 그렇다. 대낮의 뉴욕시가 내 것이 된 사실과 그 속에서 혼자가 되어버린 현실. 그 미묘한 소유관계. 영화는 이를 꾸밈없이 주인공의 뒤를 밟아가며 그대로 담아낸다. 딱 한 시간동안만.
영화 속에서 재미있는 지점은 애니메이션 ‘슈렉’을 보고 있는 로버트 네빌의 모습이다. 로버트 네빌은 슈렉의 대사를 줄줄 외운다. 발음 하나 틀리지 않는다. 재미있는 건 슈렉의 대사를 줄줄 외는 네빌의 모습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로버트 네빌과 슈렉은 닮은꼴이다. 늪지대 괴물로 살다가 인간 세상에 온 슈렉이 성에서 ‘타자’인 것처럼 좀비들의 세상 속에서 인간 로버트 네빌은 완전한 ‘타자’이다. 늪지대 괴물은 그래서 외롭다. 하지만 슈렉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외로움을 이겨나간다. 그러나 로버트 네빌에겐 강아지와 마네킹들이 있을 뿐이다. 피드백 없는 허무한 대화.
유일한 친구인 개를 찾으러 좀비 소굴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도 외로움 때문이다. 환한 대낮에 혼자가 되는 것보다 좀비 소굴 속에서 개를 찾는 것이 더 나은 결정인 것이다.
영화는 후반부에 들어 급격히 엔딩을 준비하려고 한다. 할리우드 속성이 근질대나 보다. 아쉽지만 어쩌겠나. 1억 달러나 든 블록버스터인데. 그래도 영화 시작부터 1시간까지 감독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여러 곳에 흘려 놓았다. 그것들을 하나씩 찾아보는 것이 이 영화를 감상하는 진짜 방법이겠다.
빠르게 지나가는 영화 속에서 다른 영화 ‘배트맨 vs 슈퍼맨’, ‘좋은 친구들’과 관련된 것들을 찾아냈다면 당신은 센스 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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